멸망의 벼랑 끝에서 되살아난 베드로(19.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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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9.28 12:03
멸망의 벼랑 끝에서 되살아난 베드로
(누가복음 22:31~34)
예수님에게는 열두 명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은 베드로입니다. 가톨릭에서는 베드로를 최고의 영적인 지도자요, 성인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열두 제자들을 열거할 때 베드로의 이름을 첫 번째로 기록되도록 했습니다.(눅6:14) 베드로는 주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었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대답했고, 주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하고 칭찬하셨습니다.(마16:17)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실 때에도 기적의 현장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막5:37)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다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에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가셨습니다.(마17: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던 제자들에게 찾아가셨는데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고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하고 부탁하셨습니다.(요21:15~17)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였고, 순교의 반열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처음부터 그렇게 훌륭한 신앙과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을까요? 1) 그는 갈릴리 바다의 어부였습니다.(마4:18~20) 2) 그는 가난했고, 배움이 많지 않았습니다.(행4:13) 3) 그는 과격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혈기가 많았습니다.(요18:10~11) 4) 그는 매사에 잘난 척하고 나서는 성격이었습니다.(마26:33~34) 5) 그는 비겁하고 나약하기도 했습니다.(마26:69~74) 6) 그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시몬’이라는 뜻은 갈대라는 뜻입니다. 그의 이름처럼 그의 신앙도 자꾸 흔들렸습니다. 그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후 예수님께서 곧바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금방 변하여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여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하고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이런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까? 어떻게 영광스러운 순교자가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그 답을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하루 전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어떤 은혜입니까?
첫째,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연약함을 아시고 그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공적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금식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를 선택하기 전에도 밤을 새워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셨고, 십자가를 앞에 두고 땀방울이 핏방울 떨어지듯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당신의 당면한 문제나 이권을 기도가 아니라 제자들과 당신의 백성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로마서 8장 34절에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비록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은 했으나 그가 가롯 유다처럼 자살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돌이키게 된 것은 주님의 기도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주님이 간절히 기도해주시기에 때로 우리가 넘어질지라도 영원히 실패하지 않습니다.
둘째, 주님은 베드로에게 주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61-62절에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하셨습니다. 원수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서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며 조롱할 때에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아 있었는데 그때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한 나의 말을 벌써 잊었느냐?”하시며 무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 닭이 울었고, 그때야 정신이 든 베드로는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주님은 내가 두려워할 때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내가 실패할 때 위로하시는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내가 마귀의 유혹에 빠져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할 때 물리실 수 있도록 성령의 검인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이성을 잃고 분노할 때 그것을 잠재울 수 있는 능력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십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말씀대로 어떤 특별한 상황에 직면할 때 그때마다 적절한 말씀을 생각나게 하셔서 넘어지거나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게 하십니다.
셋째, 주님은 베드로에게 사명을 주셔서 다시 일어서게 하셨습니다.
본문 32절 끝부분에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돌이킨다는 말은 회개를 의미하고, 형제를 굳게 하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을 세우는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을 세우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아직 자기도 제대로 서 있지 못한 베드로였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을 세우는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스위스의 위대한 사상가 칼 힐티(Karl Hilthe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은 자기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는 날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 목적에 쓰겠다고 작정한 그 목적을 깨닫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사명을 발견하는 순간 비범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됩니다. 보통 사람이 사명을 발견하는 순간 위대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출발이 됩니다. 사명은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사명은 사람을 성실하게 만듭니다. 사명은 사람을 용감하게 만듭니다. 사명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명은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와는 다르게 살도록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사명을 발견한 날을 인간 생애의 최고의 날이라고 말한 칼 히티의 말은 과장된 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장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다하고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명(短命)한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것이 불행한 것입니다.
은혜로운 복음성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그렇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항상 기도해주시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는 은혜도 입게 하셨고, 사명을 깨닫게 하신 은혜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의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이제 우리도 은혜의 통로가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여 듣게 하며.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아 알게 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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