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뿌리(19.11.10)

  • 관리자
  • 조회 91
  • 2019.11.16 10:14
죄의 뿌리
(시편 50:22~23)
많은 한국교회들이 11월 셋째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유래를 알아보면 최초로 복음을 들고 한국에 들어온 미국 선교사들이 1904년부터 미국과 같은 이 시기에 한국에서 추수감사절로 지키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에서 맨 처음 추수감사절을 공휴일로 제정한 사람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입니다. 그 후 제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 추수감사절이 왕의 관습이며,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두 가지 이유로 추수감사절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이 1863년 추수감사절을 미국의 연례적인 축일로 선포하면서부터 다시 지키게 되었습니다. 링컨은 “우리 국민은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이 어려움 가운데서 쟁취한 감사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감사의 정신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반드시 전해야만 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11월 셋째 목요일부터 4일간을 추수감사절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지금까지 남의 덕을 보지 않고 자기 힘으로 자수성가했다고 자랑삼아 말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과연 그 말이 맞는 말일까요? 우리 인간은 어머니가 겪은 해산의 고통을 통해 태어났고, 첫울음을 터뜨린 나를 누군가가 받아주고, 탯줄을 잘라주고, 씻어 주었습니다. 성장하면서 부모님과 가족들이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습니다. 학교에 들어가서 스승의 교훈과 가르침도 받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수를 셀 수 없는 사람들의 많은 은혜를 입고 살았습니다. 한평생의 삶을 마치고 숨을 거둔 후에도 내 가족과 친지들이 숨이 끊어진 나의 몸을 씻어 주고 새 옷을 입혀 안장해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람들의 도움만 받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이 없다면 한순간도 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존에 필요한 햇빛, 공기, 물을 공급하시고, 일용할 양식을 먹여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복을 빼버리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살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22절에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 받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갈 때 40년 동안 그들을 인도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모세는 죽기 직전에 가나안 땅에 내려다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신6:10~13) 이스라엘은 모세가 예언한 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약속하신 모든 것들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풍족하고 넉넉해지자 그들을 해방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를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갈라지게 하셨고, 결국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 남 유다는 BC 586년에 바벨론에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왜 당신의 택하신 사랑하는 백성을 찢습니까?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은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주의 음성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마음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초대교회의 설교가이며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감사하지 못한 죄가 근본적인 죄일까요? 감사하지 못한 죄에서 다른 모든 죄가 파생되어 나왔기 때문입니다. 감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거기서 미움, 시기, 질투, 원망, 불평, 싸움이 나옵니다. 감사한다면 이런 죄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하지 못한 죄는 식물로 말하면 뿌리와 같은 죄입니다.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의도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눈에 보이는 시계, 핸드폰, 의자 등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의 의도와 목적대로 완성되었고, 그대로 쓰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물건이 고장이 나거나 파손이 되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물건은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도 창조하신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서 사람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감사로 제사 드릴 때 하나님은 가장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세전부터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나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은 내가 영원히 살 천국을 준비하기 위해 승천하셨고, 다시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재림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할 때 어찌하여 감사와 찬송을 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병은 대부분 스트레스에서 옵니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마음의 상처와 부정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감사는 스트레스를 완화하고 에너지를 높이고 치유를 촉진합니다. 감사는 정서에 좋은 반응을 일으켜 혈압을 떨어뜨리고, 소화 작용을 촉진한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더 큰 복이 있습니다. 23절에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고,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이며,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종은 울리기 전까지는 종이 아닙니다. 노래는 부르기 전까지는 노래가 아닙니다. 감사는 표현하기 전까지는 감사가 아닙니다. 오늘도 코로 숨을 쉴 수 있고, 귀로 바람 소리와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두 눈으로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지금 이렇게 살아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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